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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트 입문 · 읽는 시간 9

규칙도 틀립니다 — 시장 국면이 바뀔 때

숫자로 만든 규칙은 감보다 낫지만, 항상 맞는 건 아니에요. 더 정확히 말하면 ‘어떤 시기에는 잘 맞고 어떤 시기에는 정반대로 틀리는’ 쪽에 가까워요.

규칙이 틀리는 건 고장이 아니에요

규칙 기반으로 종목을 고른다는 건, 과거 데이터에서 발견한 패턴을 앞으로도 쓰겠다는 약속이에요. 그런데 이 약속에는 조용한 전제가 하나 숨어 있어요. 앞으로의 시장이 과거의 시장과 비슷할 것이라는 전제요.

이 전제가 깨지면 규칙은 틀립니다. 코드에 버그가 생긴 것도, 데이터가 잘못 들어온 것도 아니에요. 규칙은 정확히 설계된 대로 작동하고 있는데, 그 규칙이 배운 세상과 지금 세상이 다른 거예요. 이걸 고장으로 착각하면 엉뚱한 곳을 고치게 돼요. 실제로 저희가 그랬고요.

규칙이 틀렸다는 신호를 받았을 때 던져야 할 첫 질문은 “규칙 어디가 잘못됐지?”가 아니라“지금 시장이 그 규칙이 배운 시장과 같은가?”예요. 순서를 바꾸면 멀쩡한 규칙을 망가뜨려요.

시장 국면(레짐)이라는 말

처음 나오는 용어라 한 줄로 정의할게요. 시장 국면(레짐, regime)은 시장 참여자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반응하는, 며칠에서 몇 주 이상 이어지는 상태를 말해요.

중요한 건 ‘하루 날씨’가 아니라는 점이에요. 오늘 지수가 1% 빠진 건 국면이 아니에요. 그냥 하루치 등락이죠. 국면은 계절에 가까워요. 며칠, 몇 주, 때로는 몇 달 동안같은 종류의 행동이 계속 보상받는 상태가 이어지는 거예요.

예를 들어 어떤 구간에서는 시장이 겁이 많아요. 조금만 올라도 차익 실현이 나오고, 많이 빠진 종목에는 저가 매수가 붙어요. 이런 국면에서는 ‘빠진 걸 사면 돌아온다’가 계속 통해요. 반대로 어떤 구간에서는 시장이 욕심이 많아요. 오르는 종목에 돈이 더 몰리고, 빠지는 종목은 계속 외면받죠. 이때는 ‘빠진 걸 사면 더 빠진다’가 됩니다.

같은 종목, 같은 지표, 같은 계산식인데 결과가 반대예요. 바뀐 건 종목이 아니라 돈이 반응하는 방식이에요.

서로 반대 전제를 가진 두 규칙

국면 이야기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게 이 두 가지예요. 둘 다 오래됐고, 둘 다 유명하고, 둘 다 서로를 부정해요.

규칙전제언제 이기나
평균회귀많이 빠졌으니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박스권·변동성이 잦아드는 구간
추세추종오르는 게 더 오른다방향이 한쪽으로 길게 뚫리는 구간

논리적으로 둘은 공존할 수 없어요. 평균회귀는 ‘많이 오른 건 되돌아온다’고 말하고, 추세추종은 ‘많이 오른 건 더 오른다’고 말해요. 같은 상황을 놓고 정확히 반대 결론을 내죠.

그런데 두 규칙 모두 실제로 돈을 벌어본 적이 있어요. 서로 다른 시기에요. 박스권에서는 평균회귀가 압도하고, 추세장에서는 추세추종이 압도해요. 그리고 국면이 바뀌는 순간, 직전까지 이기던 쪽이 가장 크게 다칩니다.박스권에 익숙해진 평균회귀는 추세가 시작될 때 계속 사서 계속 물리고, 추세에 익숙해진 추세추종은 추세가 끝날 때 꼭대기를 잡아요.

“이 규칙은 좋은 규칙인가?”라는 질문에는 답이 없어요. 제대로 된 질문은“이 규칙은 어떤 국면에서 좋은 규칙인가?”예요.

저희가 규칙을 고쳤다가 되돌린 기록

추상적인 이야기만 하면 와닿지 않으니, 저희가 실제로 겪은 걸 그대로 적을게요. 지금 읽어도 부끄러운 기록이에요.

문제의식은 그럴듯했어요. 변동성이 큰 구간에서는 모멘텀 점수를 믿기 어렵다는 생각이었어요. 시장이 크게 출렁일 때 ‘최근 많이 올랐다’는 사실은 진짜 상승 추세라기보다 그냥 노이즈가 커진 것에 가까울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변동성이 클 때는 모멘텀 가점을 빼는 규칙을 넣었어요.

결과는 처참했어요. 60일 기준으로 보던 예측력이 양수에서 음수로 뒤집혔어요.조금 나빠진 게 아니라, 방향 자체가 반대가 된 거예요. 규칙을 넣기 전보다 넣은 뒤가 더 나빴습니다. 즉시 롤백했어요.

여기까지는 흔한 실패담이에요. 진짜 배운 건 그다음이었어요. 원인을 뜯어보니 범인은 모멘텀이 아니었어요. 모멘텀 가점을 건드린 순간 점수 구조 전체의 균형이 흔들렸고, 그 결과 드러난 진짜 문제는 과매도 가점이었어요.

과매도 가점은 ‘많이 빠졌으니 돌아온다’는 평균회귀 전제로 만든 장치예요. 그런데 저희가 검증하던 구간의 성격이 그 전제와 맞지 않았던 거죠. 모멘텀 가점이 옆에서 어느 정도 상쇄해 주고 있었는데, 그걸 빼버리니 과매도 가점의 문제가 그대로 노출된 거예요.

  • ·증상이 나타난 곳과 원인이 있는 곳이 달랐어요. 모멘텀을 건드렸더니 숫자가 망가졌지만, 고쳐야 할 건 과매도 쪽이었어요.
  • ·점수 항목은 독립적이지 않아요. 여러 항목을 합산하는 구조에서는 한 항목을 바꾸면 다른 항목의 영향력도 같이 변해요.
  • ·롤백이 실패가 아니에요. 되돌릴 수 있게 만들어 둔 덕분에 손실이 기록으로 끝났어요. 이건 설계의 성공에 가까워요.

“상관계수 부호가 뒤집힌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용어를 먼저 풀게요. 상관계수는 두 숫자가 같이 움직이는 정도를 −1에서 +1 사이로 나타낸 값이에요. 여기서는 ‘오늘의 지표 값’과 ‘그 뒤의 수익률’이 얼마나 같이 움직였나를 잽니다.

  • ·+ (양수): 지표가 높았던 종목이 이후에 더 올랐다는 뜻. 규칙이 의도대로 작동한 거예요.
  • ·0에 가까움: 아무 관계도 없다는 뜻. 그 지표로 뭘 고르든 동전 던지기와 비슷해요.
  • ·− (음수): 지표가 높았던 종목이 이후에 올랐다는 뜻. 규칙을 거꾸로 쓰는 게 나았다는 얘기예요.

부호가 뒤집힌다는 건 세 번째 상황이에요. 실전에서 이게 무슨 뜻이냐면,내가 좋다고 판단해서 고른 종목들이 오히려 평균보다 못했다는 겁니다. 아무것도 안 고르고 그냥 시장 전체를 담은 것보다 나빴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더 불편한 사실이 있어요. 저희가 검증해 본 범위에서 지표와 이후 수익률의 상관은 대체로 0.02~0.05에 머물러요. 아주 약한 값이에요. 이렇게 약한 값은 국면이 조금만 바뀌어도 +0.03에서 −0.03으로 넘어갈 수 있어요. 절댓값은 그대로인데 방향만 반대가 되는 거죠. 애초에 0 근처에서 진동하는 값이라 부호가 안정적일 수가 없어요.

상관이 0.03에서 −0.03으로 바뀐 걸 보고 “규칙이 망가졌다”고 판단하는 건 위험해요. 원래 그 정도로 흔들리는 값이거든요. 부호가 바뀐 게 신호인지 잡음인지 구분하는 것부터가 어려운 문제예요.

국면을 미리 알 수 없다는 근본 한계

여기까지 읽으면 자연스러운 생각이 하나 떠올라요. “그럼 지금이 무슨 국면인지 알아내서 규칙을 바꾸면 되잖아?” 저희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게 왜 어려운지 배웠어요.

  • ·국면은 지나고 나서야 이름이 붙어요. “저 구간은 박스권이었다”는 건 끝나고 차트를 봐야 할 수 있는 말이에요. 박스권 안에 서 있을 때는 이게 박스권인지, 큰 추세의 시작 구간인지 구분이 안 돼요.
  • ·판정 기준을 만들면 그 기준이 또 늦어요. 예컨대 ‘20일 변동성이 평균보다 크면 위험 국면’ 같은 규칙을 넣으면, 그 조건이 켜지는 시점은 이미 변동성이 커진 뒤예요. 대응하려고 만든 장치가 사건 뒤에 울리는 알람이 되는 거죠.
  • ·국면 판정 규칙도 결국 하나의 규칙이에요. 그 규칙 역시 국면에 따라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해요. 문제를 한 단계 위로 밀어 올렸을 뿐, 해결한 게 아니에요.

실제로 저희는 선물과 현물의 가격 차이로 폭락을 미리 감지해 보려고 했어요. 103거래일을 검증했는데, 하락이 진행되는 내내 정상 신호가 나오다가 위험 신호는 바닥 당일에야 떴어요. 미리 알려주는 장치를 만들려다 결과적으로 사후 확인 장치를 만든 셈이었고, 그래서 기각했어요.

그래서 규칙을 바꾸는 대신 노출을 줄여요

국면을 미리 알 수 없다면 선택지는 두 개예요. 하나는 국면을 맞혀서 규칙을 갈아 끼우는 것, 다른 하나는 맞히기를 포기하고 틀렸을 때의 피해를 줄이는 것이에요. 저희는 두 번째를 택했어요. 겸손해서가 아니라 첫 번째가 안 되기 때문이에요.

접근필요한 것틀렸을 때
국면에 맞춰 규칙 교체국면을 미리 맞히는 능력반대 국면 규칙을 켠 채 정면으로 맞음
노출을 줄여 대응틀릴 수 있다는 전제만틀려도 피해 폭이 제한됨

노출을 줄인다는 건 구체적으로 이런 거예요. 한 종목에 몰지 않고, 한 번에 다 넣지 않고, 확신이 클수록 오히려 한 발 물러서는 것. 규칙의 정확도를 높이는 방향이 아니라정확도가 낮아도 견딜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방향이에요.

재미없는 결론이라는 거 알아요. 하지만 상관 0.02~0.05짜리 신호를 다루는 사람에게 정직한 대응은 이것밖에 없어요. 약한 신호를 강한 확신으로 포장하는 순간, 국면 한 번 바뀌는 데 무너지거든요.

짧은 기간 성적으로 규칙을 판단하면 안 되는 이유

마지막이 가장 실용적인 이야기예요. 규칙을 만들어 놓고 2주, 한 달 돌려본 뒤 성적으로 판단하고 싶어져요. 그런데 그 기간은 대체로 하나의 국면 안에 통째로 들어가 있어요.

즉 짧은 기간의 성적은 ‘이 규칙이 좋은가’를 재는 게 아니라 ‘이 규칙이 지금 국면과 맞는가’를 재고 있는 거예요. 둘은 완전히 다른 질문이고요. 운 좋게 궁합이 맞는 구간을 만나면 형편없는 규칙도 근사한 성적을 냅니다.

  • ·잘 나올 때 규칙을 키우면 국면 전환에 정면으로 맞아요. 성적이 가장 좋은 시점이 국면 후반인 경우가 많거든요.
  • ·안 나올 때 규칙을 버리면 다음 국면을 놓쳐요. 그 규칙이 맞는 계절이 오기 직전에 내다 버리는 셈이죠.
  • ·고치고 또 고치면 과거만 외우게 돼요. 최근 구간에 맞게 계속 조정한 규칙은 과거에 가장 잘 맞고 미래엔 가장 약해요.

표본이 적을 때 숫자가 얼마나 거짓말을 하는지도 겪었어요. 수익성 지표(ROE)와 이후 수익률의 상관이 572표본에서는 0.225로 꽤 높게 나왔는데, 9,800표본으로 늘리니 0.014로 주저앉았어요. 소수의 큰 승자가 만들어낸 착시였어요. 만약 572표본만 보고 “ROE가 핵심이다”라고 결론 내렸다면, 저희는 지금 전혀 다른 규칙을 쓰고 있었을 거예요.

덧붙여 정직하게 밝혀 둘 게 있어요. 저희 분석 대상은 현재 시총 상위 종목이라 생존편향이 있어요. 중간에 사라진 종목은 애초에 목록에 없어요. 그리고 검증 구간에 상승장이 많이 포함돼 있어요. 숫자를 볼 때 이 두 가지를 같이 기억해 주세요.

정리

  • ·규칙이 틀리는 건 대개 고장이 아니라 국면이 바뀐 것이에요.
  • ·평균회귀와 추세추종은 서로 반대 전제예요. 국면에 따라 승자가 바뀌고, 바뀌는 순간 직전 승자가 가장 크게 다쳐요.
  • ·상관 부호가 뒤집힌다는 건 내가 고른 종목이 평균보다 못했다는 뜻이에요. 0.02~0.05짜리 약한 값은 쉽게 뒤집혀요.
  • ·변동성 규칙을 고치려다 부호가 뒤집혀 롤백했고, 진짜 원인은 모멘텀이 아니라 과매도 가점이었어요. 증상과 원인의 위치가 달라요.
  • ·국면은 미리 알 수 없어요. 그래서 규칙을 갈아 끼우는 대신 노출을 줄이는 쪽이 현실적이에요.
  • ·짧은 기간 성적은 규칙의 품질이 아니라 규칙과 현재 국면의 궁합을 재고 있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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