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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트 입문 · 읽는 시간 8

퀀트가 뭔가요? 규칙으로 투자한다는 것

퀀트는 어려운 수학이 아니라 태도에 가까워요. ‘느낌으로 고르지 않고, 미리 정해 둔 숫자 규칙을 모든 종목에 똑같이 적용한다’ — 핵심은 이 한 줄이에요.

퀀트의 정의부터

퀀트(quant)는 quantitative, 그러니까 ‘수량적인’이라는 단어에서 왔어요. 첫 등장이니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종목을 고르는 기준을 숫자로 미리 적어 두고, 그 기준을 예외 없이 모든 종목에 똑같이 적용하는 방식이에요.

중요한 건 ‘숫자를 쓴다’가 아니라 ‘미리’‘똑같이’예요. 차트를 보고 나서 “이건 좀 예외로 하자”가 들어가는 순간 그건 퀀트가 아니에요. 숫자를 잔뜩 봐도 결정은 결국 기분으로 내리고 있다면, 그냥 숫자로 장식한 감이에요.

예를 들어 “최근 3개월 상승률 상위 20%이면서 RSI가 70 미만인 종목”이라고 적어 두면, 그게 내가 아는 회사든 처음 듣는 회사든, 어제 뉴스에 나왔든 안 나왔든, 조건에 맞으면 들어오고 안 맞으면 빠져요. 규칙은 종목 이름을 몰라요. 그게 전부이자 장점이에요.

퀀트 = 수학 실력이 아니라 ‘결정을 미리 내려 두는 습관’. 사칙연산만 써도 규칙이 고정돼 있으면 퀀트고, 머신러닝을 써도 결과를 보고 기준을 바꾸면 퀀트가 아니에요.

사람이 종목을 고를 때 생기는 일

규칙이 왜 필요한지 이해하려면, 규칙 없이 고를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부터 봐야 해요. 사람의 판단에는 본인이 눈치채기 어려운 기울기가 몇 개 있어요. 대표적인 세 가지만 볼게요.

① 최신 편향 — 최근에 오른 게 좋아 보여요.오늘 상한가를 친 종목은 내일도 오를 것처럼 보이고, 3년째 조용한 종목은 앞으로도 조용할 것처럼 보여요. 머릿속에서 최근 정보가 차지하는 자리가 과거 정보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에요. 문제는 ‘최근에 많이 올랐다’가 ‘앞으로 오른다’와 같은 말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오히려 이미 많이 오른 뒤에는 기대가 가격에 들어가 있어서 불리해지는 구간도 자주 있어요. 그런데 화면에 뜬 빨간 숫자는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아요.

② 친숙성 편향 — 아는 회사가 안전해 보여요.내가 매일 쓰는 앱을 만든 회사, 광고에서 자주 본 브랜드는 왠지 덜 위험하게 느껴져요. 하지만 ‘제품을 잘 안다’와 ‘주식이 싸다’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제품이 좋다는 건 대개 이미 모두가 아는 정보라서, 그만큼 가격에 반영돼 있을 가능성이 높거든요. 친숙함이 주는 건 안전이 아니라 안전하다는 느낌이에요. 게다가 이 편향은 포트폴리오를 한쪽으로 몰아요. 내가 아는 회사들은 보통 같은 업종에 몰려 있어서, 분산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한 산업에 전부 걸어둔 상태가 되기 쉬워요.

③ 손실회피 — 손해를 확정하기가 싫어요.같은 10만 원이라도 벌었을 때의 기쁨보다 잃었을 때의 고통이 훨씬 크게 느껴져요. 그래서 오른 종목은 “일단 챙기자”며 빨리 팔고, 내린 종목은 “팔면 진짜 손해니까”라며 오래 들고 있어요. 결과적으로 잘 되는 건 짧게, 안 되는 건 길게 가져가게 되죠. 정확히 반대로 하는 셈이에요. “본전만 오면 팔아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건 종목 분석이 아니라 내 매수 가격에 대한 감정이에요. 시장은 내가 얼마에 샀는지 모르고, 알 필요도 없고요.

편향머릿속에서 들리는 말실제로 하는 일
최신 편향“요즘 이게 제일 잘 가잖아”이미 오른 뒤에 뒤늦게 올라탐
친숙성 편향“내가 아는 회사니까 안전해”몇 개 업종에 집중 투자
손실회피“본전만 오면 정리할게”잘 되는 건 짧게, 안 되는 건 길게

규칙은 편향이 없어요. 대신 다른 게 있어요

규칙의 가장 큰 미덕은 오늘 기분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어제 손실을 봤든 오늘 뉴스가 무섭든, “상승률 상위 20% 중 RSI 70 미만”이라는 문장은 그대로예요. 내가 아는 회사라고 봐주지 않고, 처음 듣는 회사라고 빼지도 않아요.

그런데 여기서 많은 사람이 착각해요. 규칙이 편향이 없다는 게 규칙이 옳다는 뜻은 아니에요.규칙은 결국 사람이 만든 거고, 규칙 자체가 틀릴 수 있어요. 그것도 아주 조용하게, 일관되게 틀려요.

  • ·기준을 잘못 골랐을 수 있어요. “이 지표가 높으면 좋다”는 전제가 애초에 사실이 아닐 수 있어요.
  • ·맞았던 게 더는 안 맞을 수 있어요. 예전엔 통했는데 지금은 안 통하는 규칙은 흔해요. 시장 참여자가 바뀌니까요.
  • ·틀려도 일관되게 틀려요. 사람은 틀리면 눈치라도 채지만, 규칙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같은 실수를 반복해요.

실제 기록을 하나 드릴게요. 맑은 주식은 처음에 수급(외국인·기관 순매수)에 가장 큰 비중을 뒀어요. 누가 봐도 그럴듯하잖아요. 큰돈이 들어오는 종목이 오를 것 같으니까요. 그런데 9,800여 표본 5년치로 확인해 보니 이후 수익률과의 상관이 사실상 0이었어요. 그래서 비중을 절반으로 내렸어요. 규칙은 편향 없이 그 믿음을 5년 내내 충실하게 적용하고 있었던 거예요. 틀린 채로요.

정리하면, 사람은 기분 때문에 틀리고 규칙은 전제 때문에 틀려요. 규칙을 쓰는 이유는 안 틀리려는 게 아니라, 틀렸을 때 어디가 틀렸는지 찾을 수 있게 하려는 거예요. 감으로 고르면 뭐가 잘못됐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거든요.

퀀트는 예측이 아니라 줄 세우기예요

여기가 이 글에서 가장 오해가 많은 부분이에요. 점수가 높은 종목은 ‘오를 종목’이 아니라 ‘정해 둔 기준에서 앞순위인 종목’이에요. 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키 순으로 줄을 세운다고 생각해 보세요. 맨 앞에 선 사람이 농구를 잘한다는 보장은 없어요. 그냥 키가 제일 클 뿐이죠. 점수도 똑같아요. 87점이라는 건 “오를 확률 87%”가 아니라,“내가 정한 항목들을 합쳤을 때 이 종목이 앞쪽에 있다”는 뜻이에요. 기준을 바꾸면 순서가 통째로 바뀌고, 그건 종목이 변해서가 아니라 자가 바뀐 거예요.

이렇게 읽으면 틀려요이렇게 읽는 게 맞아요
“점수 87이면 오른다”“이 기준에서 상위권이다”
“점수가 높을수록 많이 오른다”순위와 수익률은 비례하지 않아요
“점수가 낮으면 나쁜 회사다”“이 기준에 안 맞을 뿐”이에요
“점수는 확률이다”점수는 확률이 아니라 등수예요

왜 이렇게 겸손해야 하냐면, 숫자가 실제로 그 정도 힘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지표와 이후 수익률의 상관은 대체로 0.02~0.05 수준이에요. 0에 가깝고, 시장 상황에 따라 부호가 뒤집히기도 해요. 상관이 0.9쯤 되면 예측이라 부를 수 있겠지만, 0.03은 “아주 살짝 기울어져 있다” 정도예요. 그 살짝 기울어진 걸 여러 번 반복해서 쌓는 게 규칙 기반 투자가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이에요.

그래서 순위는 ‘정답 목록’이 아니라 ‘한 번 더 볼 목록’에 가까워요. 200개를 다 못 보니까 기계적으로 20개로 줄인 것뿐이고, 그 20개 중에 안 오르는 종목이 섞여 있는 건 고장이 아니라 정상이에요.

헤지펀드의 퀀트와 개인의 규칙은 다른 물건이에요

‘퀀트’라는 단어 하나에 아주 다른 두 가지가 들어 있어요. 이걸 구분하지 않으면 기대치가 이상해져요.

구분기관 퀀트개인의 규칙 기반 도구
데이터틱 단위·대체 데이터·전용 계약공개된 일별 종가와 재무
속도마이크로초 단위 체결전일 종가 기준, 하루 한 번
자본수천억~조 단위개인 계좌 규모
인력박사급 팀·전담 엔지니어혼자, 혹은 소수
노리는 것아주 작은 우위 × 엄청난 횟수큰 실수를 덜 하기

데이터부터 급이 달라요. 기관은 주문 하나하나가 찍힌 데이터나 카드 결제 집계, 위성 사진 같은 걸 돈 주고 사요. 개인이 쓰는 건 누구나 볼 수 있는 종가와 공시예요. 같은 공개 정보로 남들보다 앞서기는 구조적으로 어려워요.

속도도 비교가 안 돼요. 밀리초 단위로 경쟁하는 영역에서 개인이 낄 자리는 없어요. 그래서 개인의 규칙은 애초에 그 싸움을 포기하고, 며칠에서 몇 달 단위의 느린 판에서 움직여요.

자본 규모의 방향도 반대예요. 큰돈은 작은 종목을 못 사요. 본인이 사는 행위 자체가 가격을 올려버리거든요. 개인은 그 제약이 없다는 게 몇 안 되는 실질적 이점이에요. 속도로는 절대 못 이기지만, 유연함은 있어요.

개인이 규칙을 쓰는 목적은 기관을 이기는 게 아니에요. 어제 뉴스 보고 충동적으로 지른 나를 이기는 거예요. 상대를 헷갈리면 기대치가 이상해지고, 이상한 기대는 결국 이상한 결정을 만들어요.

퀀트가 해결하지 못하는 것

마지막이 제일 중요해요. 규칙으로 안 되는 게 생각보다 많아요.

  • ·처음 벌어지는 일. 규칙은 과거 데이터에서 나왔어요. 과거에 없던 사건 — 새 규제, 처음 보는 위기 — 앞에서는 참고할 게 없어요. 그런데도 규칙은 아무렇지 않게 평소처럼 점수를 뱉어요. 모른다는 말을 할 줄 몰라요.
  • ·숫자에 안 잡히는 것. 경영진이 믿을 만한지, 회계가 깨끗한지, 기술이 진짜인지는 재무제표 몇 줄로 안 나와요. 규칙은 측정할 수 있는 것만 봐요. 중요한 것과 측정되는 것은 자주 다른 집합이에요.
  • ·시장이 변하는 속도. 어떤 규칙이 잘 통한다고 알려지면 사람들이 따라 하고, 따라 하면 우위가 사라져요. 잘 맞던 규칙이 조용히 안 맞게 되는 건 예외가 아니라 기본값이에요.
  • ·검증 자체의 한계. 맑은 주식의 분석 대상은 현재 시총 상위라 생존편향이 있어요. 망해서 사라진 종목이 표본에 없다는 뜻이에요. 검증 구간에도 상승장이 많고요. 성적이 실제보다 좋게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 ·지키는 일. 이게 진짜 마지막 관문이에요. 규칙을 만드는 것보다 손실 구간에서 그 규칙을 그대로 따르는 게 훨씬 어려워요. 규칙은 종이에 적혀 있을 때가 아니라 지켜질 때만 규칙이에요.

그래서 퀀트는 ‘돈 버는 기계’가 아니라 ‘덜 흔들리게 하는 장치’에 가까워요. 같은 기준을 계속 적용해서, 나중에 뭐가 잘못됐는지 되짚을 수 있게 만드는 것. 기대치를 여기까지 낮춰 두면 규칙은 꽤 쓸 만하고, 이보다 높이면 거의 확실히 실망해요.

정리

  • ·퀀트 = 숫자 규칙을 미리 정해 모든 종목에 똑같이 적용하는 방식.
  • ·사람은 최신 편향·친숙성 편향·손실회피 때문에 흔들려요. 규칙은 안 흔들리지만 전제가 틀릴 수 있어요.
  • ·점수는 예측이 아니라 줄 세우기. 87점은 확률이 아니라 등수예요.
  • ·기관 퀀트와 개인의 규칙은 데이터·속도·자본이 전부 달라요. 목표도 달라야 해요.
  • ·처음 겪는 일, 숫자에 안 잡히는 것, 변하는 시장, 그리고 규칙을 지키는 일 — 이건 퀀트가 못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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