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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트 입문 · 읽는 시간 9

종목을 보기 전에 시장을 봅니다 — 두 층의 판단

좋은 종목을 고르는 일과, 지금이 종목을 고를 때인지 판단하는 일은 완전히 다른 문제예요. 이 둘을 한 덩어리로 섞으면 둘 다 흐려집니다.

판단은 두 층으로 나뉘어요

종목 점수는 “이 종목이 다른 종목들에 비해 어떤가”를 봐요. 추세, 과열·과매도, 거래량, 재무 같은 걸 모아 상대적인 순위를 매기는 일이에요. 비교 대상이 다른 종목이라는 게 핵심이에요.

시장 상태는 “지금 전체 판이 어떤가”를 봐요. 지수가 어디에 있는지, 변동이 커지고 있는지, 밤사이 해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같은 것들이죠. 여기엔 개별 종목이 아예 등장하지 않아요.

두 질문은 층이 달라요. 같은 종목이 같은 점수를 받아도, 그 점수가 놓인 판이 다르면 결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걸 하나의 숫자로 합치지 않고 두 층으로 따로 계산해 둡니다.

구분종목 층시장 층
묻는 것다른 종목보다 나은가지금 판이 어떤가
비교 대상같은 날의 다른 종목들며칠 전·몇 주 전의 시장
바뀌는 속도종목마다 제각각전체가 같이 움직임
쓰임누구를 보여줄까몇 개를 보여줄까

종목만 보면 안 되는 이유 — 상관이 높아져요

평소에는 종목마다 사정이 달라요. 어떤 종목은 오르고 어떤 종목은 내려요. 이럴 때는 종목 점수가 그럭저럭 자기 역할을 해요. 점수가 높은 쪽과 낮은 쪽이 실제로 다르게 움직이니까요.

그런데 시장이 크게 빠지는 구간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져요. 종목들이 다 같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해요.이걸 ‘상관이 높아진다’고 표현하는데, 첫 등장이니 한 줄로 정의하면 서로 다르게 움직이던 것들이 한꺼번에 같이 움직이게 되는 현상이에요.

왜 이런 일이 생기냐면, 급락 구간에서 사람들이 파는 이유가 종목별 사정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현금이 필요하거나 위험을 줄여야 해서 파는 거라, 파는 순서가 종목의 좋고 나쁨과 별 상관이 없어요.오히려 잘 오른 종목이 먼저 팔리기도 해요. 팔기 쉽고 이익이 나 있으니까요.

  • ·좋은 점수가 무력해져요. 점수 상위와 하위의 수익률 차이가 평소보다 줄어듭니다. 잘 고르는 능력의 값어치가 떨어지는 거예요.
  • ·분산 효과도 같이 줄어요. 여러 종목에 나눠 담아 위험을 낮추려 했는데, 다 같이 움직이면 나눠 담은 의미가 옅어져요.
  • ·부호가 뒤집히기도 해요. 저희 기록으로도 지표와 이후 수익률의 상관은 대체로 0.02~0.05 수준으로 약하고, 시장 상황에 따라 부호가 뒤집혀요. 평소에 도움이 되던 신호가 특정 구간에서는 반대로 작동한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좋은 종목을 고르면 시장은 신경 안 써도 된다”는 말은 반쯤만 맞아요.고르는 능력이 가장 필요할 때, 그 능력이 가장 안 통합니다. 이 비대칭을 인정하는 데서 시장 층이 시작돼요.

시장 층에서는 뭘 보나요

시장 층은 복잡할수록 좋은 게 아니에요. 수십 개 지표를 쌓아도 결국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는 성격이 다른 몇 가지만 봅니다.

  • ·공포지수(변동성 지수). 앞으로 얼마나 출렁일 거라 보는지를 나타내는 숫자예요. 값 자체보다 며칠 새 얼마나 빠르게 올랐는지가 정보량이 많아요. 높은 수준에서 오래 머무는 것과, 낮다가 이틀 만에 치솟는 건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 ·환율 변화. 원화가 빠르게 약해지는 구간은 외국인 자금 흐름과 얽혀요. 여기서도 절대 수준보다 변화 속도를 봅니다.
  • ·간밤 해외 지수. 국내 장은 밤사이 해외 흐름을 받아 시작해요. 이건 예측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을 확인하는 항목이에요.
  • ·며칠 단위 국면. 지수가 최근 며칠간 어떤 자리에 있었는지를 몇 단계로 뭉뚱그려 둡니다. 하루 등락에 국면이 매번 바뀌면 판단이 아니라 소음이 되니까요.

전부 전일 종가 기준이고, 가격은 KRX 기준을 씁니다. 실시간이 아니라서 장중에 상황이 급변하면 그날 판단에는 반영되지 않아요. 이건 한계지만, 실시간으로 바꾼다고 예측력이 생기지는 않아요. 판단이 더 자주 흔들릴 뿐입니다.

두 층을 합치는 방법 — 점수가 아니라 개수를 건드려요

여기가 이 글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에요. 시장이 나쁠 때 저희는 종목 점수를 다시 계산하지 않아요.대신 그날 내보내는 종목 개수를 줄입니다. 시장이 험하면 후보를 적게, 평온하면 평소만큼요.

직관적으로는 반대로 하고 싶어져요. 시장이 나쁘니까 방어적인 종목에 가점을 주고 공격적인 종목에 벌점을 주는 식으로요.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그렇게 하면 구조가 무너져요.

  • ·점수 체계가 여러 개가 돼요. 시장 상태마다 규칙이 달라지면 사실상 규칙이 서너 개인 셈이에요. 그러면 각 규칙이 겪은 사례 수가 쪼개져서, 표본이 모자라 아무것도 검증할 수 없게 돼요.
  • ·성적이 왜 나왔는지 분리가 안 돼요. 결과가 좋았을 때 그게 종목 고르기가 좋아서인지 시장 판단이 맞아서인지 구분할 수 없어요. 구분이 안 되면 고칠 곳도 못 찾습니다.
  • ·과거에 맞추기 쉬워져요. 조건이 늘어날수록 과거 차트에 예쁘게 맞는 조합을 찾기가 쉬워져요. 그건 규칙을 개선한 게 아니라 과거를 외운 것에 가깝고, 새로운 구간에서는 대체로 무너집니다.
  • ·실제로 겪은 적 있어요. 변동성이 클 때 모멘텀 가점을 빼는 규칙을 넣었다가, 60일 기준 예측력이 양수에서 음수로 뒤집혀 바로 되돌렸어요. 더 흥미로운 건 진짜 원인이 모멘텀이 아니라 과매도 가점이었다는 점이에요. 시장 상태로 점수를 조건부로 바꾸면 이런 얽힘이 생기고, 원인을 추적하는 데 한참 걸려요.

반면 개수를 줄이는 방식은 점수 체계를 그대로 둬요. 점수는 한 벌뿐이라 계속 같은 잣대로 검증할 수 있고, 시장 판단은 그 위에 얹힌 별개의 손잡이로 남아요. 손잡이가 틀렸다면 손잡이만 고치면 되고, 점수가 틀렸다면 점수만 고치면 돼요.

같은 이야기를 한 줄로 하면 이래요. 시장 층은 ‘무엇을’이 아니라 ‘얼마나’를 결정해요.종목 순위는 시장이 어떻든 같은 방식으로 매기고, 시장이 험하면 그 순위에서 위쪽 몇 개만 내보내는 거예요.

참고로 저희에겐 같은 종목을 계속 반복해서 내보내지 않도록 하는 반복 페널티도 있어요. 이것도 점수 자체를 흔드는 게 아니라 내보내는 단계에서 거르는 장치라서, 시장 층과 성격이 같은 층에 있어요.

시장 판단의 한계 — 하락을 미리 알려주는 지표는 없어요

여기서 정직하게 밝혀야 할 게 있어요. 시장 층을 둔다고 해서 하락을 미리 아는 건 아니에요.오히려 저희가 검증하면서 확인한 건 그 반대에 가까워요.

선물과 현물의 가격 차이로 폭락을 미리 감지해 보려 한 적이 있어요. 큰돈이 먼저 움직이는 곳에서 신호가 먼저 나올 거라는 가설이었죠.103거래일을 검증했더니, 하락이 진행되는 내내 정상 신호가 나왔고 위험 신호는 바닥 당일에야 켜졌어요. 그래서 기각했어요.

이 실패가 알려주는 건 특정 지표 하나의 문제가 아니에요. 조금 더 일반적인 이야기예요.

  • ·대부분의 시장 지표는 후행해요. 이미 벌어진 하락을 확인해 주지, 앞으로의 하락을 알려주지 않아요.
  • ·미리 알려주는 것처럼 보이는 지표는 대체로 자주 틀려요. 경고를 자주 켜면 큰 하락 전에도 한 번은 켜져 있게 되고, 그게 ‘맞혔다’로 기억돼요. 앞 글에서 다룬 생존편향과 같은 구조예요.
  • ·바닥 당일에 켜지는 신호는 최악이에요.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가장 팔면 안 될 때 팔라고 말하는 셈이니까요.

그래서 결론은 예측이 아니라 노출 조절

시장 층의 목적은 하락을 맞히는 게 아니에요. 지금 판이 험한 편인지를 대략 알고, 그에 맞춰 내놓는 양을 줄이는 것이에요. 틀릴 걸 전제로 설계된 장치라는 뜻이에요.

이 차이가 왜 중요하냐면, 예측을 목표로 하면 틀렸을 때 손해가 크고 맞히려는 유혹 때문에 규칙이 계속 복잡해져요. 반면 노출 조절을 목표로 하면 틀려도 손해가 작아요. 험하다고 봤는데 아니었으면 기회를 조금 놓친 거고, 평온하다고 봤는데 험했으면 평소만큼 노출된 거예요. 두 오류의 크기가 모두 감당할 만한 수준에 머물러요.

정리하면 이 두 층은 각자 할 수 있는 일만 해요. 종목 층은 같은 판 안에서 상대적인 순위를 매기고, 시장 층은 그 판이 얼마나 험한지를 보고 양을 조절해요. 어느 쪽도 미래를 알려주지 않고, 그렇게 설계한 것도 아니에요.덜 틀리게, 틀렸을 때 덜 아프게 만드는 쪽에 가깝습니다.

정리

  • ·개별 종목 점수와 시장 상태는 별개의 층이에요. 한 숫자로 섞으면 둘 다 흐려져요.
  • ·급락 구간에서는 종목들이 다 같이 움직여(상관 상승) 좋은 점수가 무력해져요. 지표 상관은 원래 0.02~0.05로 약하고 시장에 따라 부호도 뒤집혀요.
  • ·시장 층에서 보는 것: 공포지수 변화, 환율 변화 속도, 간밤 해외 지수, 며칠 단위 국면. 모두 전일 종가 기준.
  • ·두 층의 결합은 점수 재계산이 아니라 내보내는 개수 조절. 점수 체계를 한 벌로 유지해야 검증이 가능해요.
  • ·조건부 점수는 실제로 실패했어요. 변동성 조건 모멘텀 가점 규칙은 예측력을 음수로 뒤집어 즉시 롤백했고, 원인은 엉뚱한 곳에 있었어요.
  • ·하락을 미리 알려주는 지표는 대체로 없어요. 선물 조기경고는 103거래일 검증에서 바닥 당일에야 켜져 기각됐어요.
  • ·그래서 목표는 예측이 아니라 노출 조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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